본문 바로가기
반려동물 이야기

반려견 vs 식용견 구분의 허상 (유전, 법적 정의, 기준)

by 반려백서지기 2025. 6. 24.

즐거운 강아지와 슬픈 강아지

한국 사회에서 개를 바라보는 시선은 오랫동안 양극단을 오갔다. 한쪽에서는 ‘반려견’으로, 다른 한쪽에서는 ‘식용견’으로 취급되어 온 이중적 인식은 이제 국내외적으로 도전을 받고 있다. 과연 개를 반려동물과 식용동물로 나누는 것이 유전학적, 법적, 윤리적으로 정당한 일일까? 이 글에서는 유전적 실체, 법적 기준, 사회 문화적 배경을 바탕으로 반려견과 식용견을 나누는 행위가 갖는 한계와 그 허구성에 대해 비판적으로 고찰해본다.

유전적으로 같은 종, 과연 구분이 가능한가?

‘식용견’이라는 용어는 엄밀히 말해 국제적으로 통용되지 않는다. 이는 한국과 일부 아시아 국가에서 특정 품종의 개를 식용의 목적으로 사육하거나 소비하는 데서 비롯된 지역적, 문화적 개념이다. 하지만 유전학적으로 봤을 때, ‘식용견’과 ‘반려견’은 동일한 종인 Canis lupus familiaris에 속한다. 다시 말해, 진돗개, 누렁이, 삽살개, 리트리버, 푸들, 말티즈 등 모든 개는 종 수준에서는 동일하며, 유전적으로 차별할 근거가 없다.

일부에서는 ‘식용견은 성격이 다르다’, ‘덩치가 크다’, ‘사람과 교감이 적다’는 식의 주장을 내세우지만, 이는 과학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오히려 개가 가진 사회성, 감정 교류 능력, 학습 능력 등은 대부분의 품종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며, 사육 환경과 인간의 대우에 따라 행동이 다르게 나타날 뿐이다.

예컨대 농장에서 사육되는 이른바 ‘식용견’들도 충분한 애정과 관심을 받는다면 반려견 못지않은 사회성과 교감 능력을 보인다. 반대로, 반려견으로 키워지는 푸들이나 치와와도 방치되고 학대를 받는다면 공격적이고 무기력한 행동을 보일 수 있다. 이는 품종이나 용도가 아니라 환경과 인간의 태도가 동물의 행동과 삶의 질을 결정짓는 주요 요소임을 의미한다.

더불어 역사적으로도 개를 식용했던 사례는 특정 품종에 국한되지 않았다. 외국에서는 리트리버나 저먼셰퍼드, 닥스훈트 같은 개들도 과거 일부 지역에서 식용으로 쓰인 바 있다. 이는 어떤 견종이 식용이고, 어떤 견종이 반려용이라는 인식 자체가 문화적으로 형성된 맥락적 구분임을 잘 보여준다. 결국, 유전적으로 동일한 개들을 ‘반려견’과 ‘식용견’으로 구분하는 것은 생물학적 실체가 없는, 순전히 인간 중심의 편의적 구분이라 할 수 있다.

법적 정의의 모호성과 사회 혼란

법률적으로도 대한민국은 개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오랜 시간 취하지 못했다. 개고기 문제는 수십 년 동안 법적 공백 속에서 방치되었고, 그 결과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반복되어 왔다.

현행 식품위생법에 따르면 개고기는 ‘식품’으로 분류되지 않는다. 또한 축산물 위생관리법상 개는 식용 도축 대상 동물에 포함되지 않으므로, 이를 도축하여 판매하는 행위는 명백한 법 위반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개고기 소비를 금지한다’는 조항도 없어, 오랜 기간 ‘회색지대’로 방치되어 왔다.

이러한 법적 모호성은 ‘반려견과 식용견’이라는 인위적인 구분을 사회적으로 용인하는 구조적 기반이 되어왔다. 정부나 지자체는 개고기 소비에 대한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거나 지역 상황에 따라 다르게 해석해왔고, 심지어 일부 지자체에서는 ‘식용견 농장’을 등록 관리하기까지 했다. 이처럼 동일한 동물을 두고 행정기관조차 일관된 판단을 하지 못하는 상황은 국민들에게 큰 혼란을 주었고, 법의 공정성과 정의성에도 의문을 남겼다.

최근에는 동물보호법과 환경법 등을 통해 개 사육장의 위생 문제, 학대 문제 등이 조명되며 강제 폐쇄나 단속이 이뤄지고 있지만, 아직까지 반려견과 식용견을 구분하는 법적 정의나 기준은 존재하지 않는다. 이는 법적 구분 없이 사회적, 경제적 이해관계에 따라 동일한 동물이 ‘식용’과 ‘반려’로 나뉘는 기형적인 구조를 보여준다. 이제는 개에 대한 법적 지위를 근본적으로 재정의할 시점이다.

사회적 기준과 문화적 인식의 충돌

한국 사회에서 개는 동시에 ‘가족’이자 ‘식재료’로 인식되어 왔다. 이 모순적인 상황은 문화적 관습과 현대적 윤리 기준이 충돌하는 대표적인 사례다. 과거 농경사회에서는 단백질 공급원이 부족했고, 개는 소와 돼지처럼 생계유지를 위한 동물로 여겨지기도 했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은 더 이상 생존을 위해 개고기를 소비해야 하는 상황이 아니다.

더욱이 최근 10년 사이 반려동물에 대한 인식은 급속히 변화해 왔다. 2024년 기준, 대한민국 전체 가구의 약 30% 이상이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으며, 그중 대부분은 강아지를 가족의 일원으로 인식하고 있다. ‘펫팸족’, ‘펫티켓’, ‘반려동물 장례 문화’와 같은 신조어가 등장한 것도 이러한 사회 인식의 변화를 반영하는 현상이다.

하지만 여전히 일부 계층에서는 ‘식용견은 다르다’는 주장을 지속하고 있다. 이들의 논리는 전통문화, 생계유지, 식문화 다양성 등을 내세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변화한 시대 환경과 윤리 기준, 그리고 과학적 사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고 있다.

특히 SNS와 국제사회의 영향력은 크다. 한국의 개고기 문화는 해외 언론과 동물권 단체로부터 반복적으로 비판을 받아왔고, 이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에도 영향을 미쳤다. 2018년 평창올림픽 당시에도 개고기 이슈는 국제 언론의 주요 관심사였고, 많은 외국인들이 ‘개고기를 먹는 나라’라는 인식으로 한국을 바라보기도 했다.

결과적으로 여론은 점차 ‘모든 개는 보호받아야 할 생명’이라는 쪽으로 기울고 있다. 단순히 감성적인 이유가 아니라, 법적, 윤리적, 과학적 근거에 기반한 판단이기 때문이다.

결론: 반려와 식용의 경계는 허상이다

‘반려견’과 ‘식용견’의 구분은 유전학적으로 근거가 없고, 법적으로도 명확하지 않으며, 윤리적으로도 납득되기 어렵다. 결국 이 구분은 인간의 이익과 편의에 따라 만든 사회적 환상일 뿐이다. 누군가에게는 가족이고, 누군가에게는 식재료가 될 수 있는 존재라는 인식은 생명의 존엄성을 훼손하며, 동물권의 기본 원칙에도 반한다.

한국 사회가 진정으로 선진적인 생명윤리 국가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이제는 모든 개를 ‘동등한 생명체’로 바라보는 시선이 필요하다. 그리고 이러한 인식의 변화는 단지 법률 개정에만 그치지 않고, 교육, 문화, 산업 구조 등 전방위적인 개혁으로 이어져야 한다.

개는 단순한 소비 대상이 아니다. 그들은 우리와 감정을 공유하며, 상호작용하고, 삶을 함께하는 존재다. 지금이야말로, 반려견과 식용견이라는 허구적 구분을 넘어, 모든 개가 존중받는 사회로 나아가야 할 때다.